※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쇼피파이(Shopify)’라는 기업을 통해 전자상거래(EC·Electronic Commerce)의 미래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쇼피파이는 2006년 캐나다 오타와에 설립된 EC 플랫폼 개발·운영 기업인데요. 최근 몇 년 새 아마존에 맞설 최강의 상대로 떠올랐습니다. 올 3월 코로나 사태 이후로 주가가 3배 가까이 상승, 12월 2일 현재 시가총액이 144조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같은 기간 국내 시총 2위인 SK하이닉스(79조원)의 1.8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 그룹이 최근 중점 투자하는 기업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쇼피파이는 사이트 제작, 고객 관리, 결제, 배송 등 EC에 필요한 기능을 월 29달러부터 시작하는 저렴한 요금으로 일괄 제공합니다. SNS와 제휴하기 쉽고, 오프라인 점포를 겸할 경우 관련 판매 시스템도 함께 제공합니다. 현재 175개국에 진출해 있고요. 의류·책·잡화·음료 등 다양한 제품을 파는 130만 사업자가 쇼피파이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라이벌이 많은 비즈니스 모델이지만, 모바일에서 사용이 편리하고 사업자 입장에서 초기 비용 부담이 매우 낮기 때문에 급성장하고 있지요.
수익모델은 두가지입니다. 판매자에게 달마다 수수료를 부과하고 자사 플랫폼의 모든 거래에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받는 것입니다. 원래도 급성장 중이었는데, 코로나 사태에서 살아남으려는 소매 업체들이 너도나도 EC에 뛰어들면서 성장 속도가 더 빨라졌습니다. 올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의 거의 2배인 7억1430만달러에 달했는데요. 2분기 쇼피파이를 사용해 새로 EC를 시작한 기업·가게 숫자는 전년 동기보다 71%나 증가했습니다.
그럼 쇼피파이를 통해 아마존 다음 세상의 어떤 것을 예측해 볼 수 있을까요? 아마존·쿠팡 등이 전 소매 업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나중 얘기일 수도 있지만, 다음의 3가지 관점에서 전망해볼까 합니다.
1. 아마존·쿠팡 등 거대 온라인쇼핑몰이 EC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2. 인터넷이 PC와 모바일을 넘어 모든 물건에 연결된다면, EC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3. EC 업계에서 쇼피파이의 성격은 콘텐츠 업계의 유튜브와 비슷해질 수 있다
쇼피파이의 대두에 호응하듯, 루이뷔통·디즈니·나이키 등 점점 더 많은 기업이 아마존에 입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기업의 EC사이트 개발·운영을 맡고 있는 기업이 바로 쇼피파이입니다. 대기업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소·상공인들이 EC에 뛰어들면서 쇼피파이 플랫폼 사용자가 되어주고 있는데요. 사실 이 부분이 쇼피파이의 진정한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급한 예측이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쇼피파이와 같은 형태의 기업이 장기적으로는 아마존이나 쿠팡, 일본의 라쿠텐 같은 EC 대기업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1. 아마존·쿠팡 등 거대 온라인 쇼핑몰이 EC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아마존 때문에 백화점 등 과거의 업계 제왕들이 줄줄이 폐업하고 있다는건 이제 뉴스도 아니지요. 국내에서도 ‘한국의 아마존’을 꿈꾸는 쿠팡, 압도적 검색 점유율을 바탕으로 EC사업에서 맹공을 퍼붓는 네이버, SK그룹 11번가와 아마존의 제휴, 신세계·롯데 등 오프라인 유통강자의 EC 강화 등 전쟁이 치열합니다. 하지만 북미에서 아마존 대항마로 성장한 쇼피파이의 모델을 보면, EC의 방향이 반드시 대규모 온라인 쇼핑몰 방식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오프라인 시대에도 모든 브랜드가 백화점·쇼핑몰에 들어가야 했던건 아닙니다. 자체 브랜드력이나 고객과의 접점을 스스로 만들 자신이 있다면, 단독의 가게, 심지어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외진 곳에 가게를 내어도 충분히 장사할 수가 있었지요.
즉 EC 시대에도 각 소매업자들은 자신에게 가장 큰 이익을 주는 방식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하게 되면 그 쇼핑몰 파워에 의해 더 많은 소비자에게 쉽게 노출되고 그만큼 판매 기회를 얻을 수 있지요. 하지만 수수료가 많이 들고, 독자적인 판매 권한이 제한되는 등의 단점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요즘처럼 SNS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환경에서 스스로 마케팅이 가능하다면, 독자 사이트를 갖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쇼피파이의 창업자 겸 CEO인 토비아스 뤼트케는 1981년생, 아직 서른 아홉입니다. 독일인인 그는 2002년 캐나다 휘슬러에 스노보드를 타러왔다가 캐나다인 아내를 맞아 그의 고향인 캐나다 오타와에 정착합니다. 2004년 스물셋 나이에 동료들과 함께 스노보드 가게를 열었는데, 당시에 사용했던 EC 플랫폼이 너무 불편하고 비싸다는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뤼트케와 그의 캐나다인 아내는 모두 프로그래밍 전문가였기 때문에 아예 자신들의 EC플랫폼을 새로 만들기로 했지요. 그렇게 해서 뤼트케는 2006년 쇼피파이를 창업하고 아예 EC 개발 플랫폼 쪽으로 전업했습니다.
당시 뤼트케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시작했는데, 모두가 EC를 쉽게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워드프레스를 통해 사람들이 블로그나 콘텐츠 웹사이트를 쉽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처럼, 쇼피파이를 쓰면 기술을 몰라도 즉시 온라인 스토어를 개설·운영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었죠. 핵심은 고객이 팔 물건만 갖고 있으면, 재고 추적이나 배송, 판매 및 마케팅 분석 같은 회사의 핵심 기능까지 전부 대신 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이트 개설·운영비, 판매 과정에서 드는 비용을 최소화해 쇼피파이라는 플랫폼에 점점 더 많은 고객이 모이도록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아마존·쿠팡이 거대한 시스템을 구축해 시장을 장악해 나가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플랫폼은 그 플랫폼 사용자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느냐에 따른 네트워크 효과(그 상품을 쓰는 사람들이 일종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다른 사람의 수요에 영향을 주는 것)로 판가름 나지요. 사용자가 얻는 이익이 다른 플랫폼에 비해 떨어지게 되면 선점 효과가 허무하게 무너질 수도 있는 겁니다. 아마존·쿠팡이 더 성장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그런 거대한 온라인쇼핑몰이 EC 세상의 전부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가까운 일본의 경우 아마존재팬·라쿠텐이 소매업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쇼피파이의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하는 베이스(BASE)라는 기업이 맹활약 중입니다. 일본 백화점들과 제휴해 이들 업체들의 EC를 대행해주는 사업으로 대박을 내면서 12월2일 기준 시가총액이 2조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2. 인터넷이 PC와 모바일을 넘어 모든 물건에 연결된다면, EC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시대가 올 것이라고 얘기하지요. 인터넷을 PC로 이용하다가 지금은 스마트폰을 통해 주로 이용하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주변에 있는 다양한 물건에 연결돼 인터넷의 사용이 마치 주변 환경의 일부처럼 바뀐다는 것입니다. 상상입니다만, 그렇게 되면 EC는 어떻게 진화할까요. 굳이 스마트폰에서 아마존·쿠팡에 들어가 물건을 검색해 주문할 필요가 없어질지 모릅니다. 쇼피파이는 각 판매업자 사이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해주지요. 이것이 사물인터넷으로 매끄럽게 연동될 경우, 굳이 중간에 아마존·쿠팡 같은 거대 EC 기업이 끼지 않더라도 매끄러운 거래가 이뤄질지 모릅니다.
토비아스 CEO 역시 앞으로는 고객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상품을 구매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문자 메시지, 스냅챗, 페이스북, 틱톡, 넷플릭스, 가상현실(VR) 등 수단을 가리지 않고, 어떤 환경에서나 자연스럽게 구매 환경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비자·판매자 모두 더 큰 만족을 얻어야 한다는 것일텐데요. 판매자의 경우 IoT 시대에 온라인쇼핑몰을 고집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수수료 혹은 가격 경쟁에만 내몰리는 부담이 적어지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홍보할 권한이 커진다면 말입니다. 배송이 빠르다는게 대형 온라인쇼핑몰의 무기일 수 있는데, 이 역시 물류의 무인·자동화, 공용화 등이 더 진전되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고요. 또 쇼피파이 같은 EC개발·운영 플랫폼도 자체 물류망을 갖춰나가는 쪽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택배 스피드 면에서도 차이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 3. EC 업계에서 쇼피파이의 성격은 콘텐츠 업계의 유튜브와 비슷할 수 있다
미디어 업계는 유튜브 세상이지요. 개인이 전부 미디어가 되고, 그 개인적인 미디어를 세계인이 즐기고, 콘텐츠를 생산한 개인이 수익을 얻는 구조입니다. 수천명의 고급 인력이 풀타임으로 일해 만들어낸 프로그램을 시간표에 따라 쏟아내는 거대 규모의 공중파 방송국이 어떤 경우는 한 두명이 만드는 유튜브 동영상보다도 영향력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지요.
앞으로 소매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세계 시청자들에게 쉽게 콘텐츠를 만들어 전달할 수 있게 됐듯, 쇼피파이 혹은 또 앞으로 나올 더 발전된 EC개발·운영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더 쉽게 세계인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 수 있게 되는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것이죠.
특히 몇몇 거대 기업이 소매업계를 장악하는 것에 대한 반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마존이 물건값을 낮추고 쇼핑을 편리하게 해줬지만, 소매업의 수많은 고용을 빼앗아간다는 비판도 많지요. 이 때문에 아마존 같은 기업에 대한 각국 정부의 감독이 강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즉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에서 수많은 소상공인의 고용을 어떻게 유지할지가 큰 이슈가 될텐데요. 쇼피파이 등을 활용해 더 많은 상공인들이 EC로 전환해 작지만 다양한 성공을 거둔다면, 사회·경제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쇼피파이의 직원은 2019년 말 현재 5000명으로 아마존의 16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쇼피파이를 사용하는 소매 사업자에 의한 고용은 2019년 말 210만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50% 증가했습니다.
쇼피파이 모델은 요즘 추세와도 맞습니다. 젊은층은 온라인쇼핑몰의 구매 후기보다는 SNS등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인플루언서 의견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상품이나 사업자와의 공감, 지역 활성화에 대한 관심도 높지요. 따라서 이런 요소까지 결부된다면, 대형 온라인몰을 통하지 않더라도 개성이 있는 개별 소매사업자가 더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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